
지강유철 ( http://www.yucheol.com )의 글에서 펌 내가 읽은 장기려의 글 중에 가장 감동적인 글은 말년의 일기들이다. 내가 읽은 선생의 말년 일기는 아름다웠다. 물론 문장이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다른 글도 그렇지만 선생의 일기는 부사와 형용사, 그러니까 자신의 주관적인 느낌이 거의 배제된 동사 위주의 재미없는 글이다. 초등학생의 일기처럼 선생은 그날 그날 자신의 몸으로 움직인 흔적들을 무표정하게 기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생의 글을 아름답게 느끼고 감동을 경험하는 것은 선생의 성실함과 솔직함과 치열함에 절로 고개가 숙여지기 때문이다. 선생의 글 중 내가 그 다음으로 아름답다고 느끼는 글은 "산상수훈"이다. 물론 선생의 글 중에 어느 부분이 빼어난 글은 꽤나 있다. "산상수훈"의 다른 점은 글 전체가 높은 퀄리티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이 글을 처음 읽을 때 "이 글이 장기려의 문장이 맞나?" 싶었다. 사실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선생의 글 중에는 편집자에 의해 가필된 글들이 많다. 그러나 이 글은 가필된 것이 아니다. 나는 이 글의 원문을 확인했다. 그래서 더 놀랐다. 장기려 선생처럼 무뚝뚝한 분이 "그리고 상쾌한 바람을 맞으시면서 푸른 풀밭에 앉으셨다. 많은 무리는 산 기슭에 머물러 있었고 다만 예수님을 선생님으로 모시고 존경하는 소수의 제자들만이 그의 뒤를 따라 그의 발 밑으로 나아갔다."라는 표현을 쓰시다니! 물론 이 글에서도 선생은 형용사를 남발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생의 문장은 아름답다. 나는 짐작한다. 선생이 이 글을 쓸 때 선생의 마음은 아름다움으로 고양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선생처럼 무뚝뚝한 사람이 이렇게 아름다운 문장을 구사했다는 것은 이 산상수훈의 내용이 그의 생각 속에서 충분히 익숙하고, 충분히 숙성되었기 때문이리라. 새벽에 이 글을 다시 읽었고, 식구들과 함께 나누고 싶었다. 산상수훈/장기려 예수님께서 갈릴리 여러 촌에 두루 다니시면서 하늘나라의 복음을 전하시던 때이었다.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예수님은 많은 무리를 보시면 흔히는 저들을 피하셨다. 이 때도 예수님은 저들을 피하시는 모양으로 어떤 조그마한 산에 올라가셨다. 그리고 상쾌한 바람을 맞으시면서 푸른 풀밭에 앉으셨다. 많은 무리는 산 기슭에 머물러 있었고 다만 예수님을 선생님으로 모시고 존경하는 소수의 제자들만이 그의 뒤를 따라 그의 발 밑으로 나아갔다. 제 1소식 행복한 사람들! 그들은 어떠한 사람인가 첫째로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다. 마음의 부와 재산을 가지지못한 사람이다. 자기의 가슴 속에 자랑할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는 사람, 도리어 여러 가지 부끄러운 영적 실패의 연고로 자기 자신이 싫어진 사람, 또는 나는 죄인의 괴수라고 느껴지고 말할 수 있는 사람, 그의 심령이 질그릇 같이 깨어진 상태에 있는 사람, 이러한 사람들이 참으로 행복된 사람이다. 왜냐하면 천국이 이러한 사람들의 것이니까, 천국이라고 하면 많은 덕을 쌓은 훌륭한 사람에게 주어진 상은 아니다. 반대로 그것은 영적 무산자들에게 주어진 은사이다. 어린 아이와 같이 빈 마음의 소유자만이 거기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둘째로 행복한 자는 슬퍼하는 사람, 슬퍼서 우는 사람이다. 마음이 무엇엔가 불리워 찢겨진 사람, 그 아픈 것, 때문에 신음하는 사람, 탄식으로 인하여 피곤한 사람, 눈꺼플은 눈물로 인하여 드리워져 있고 심장은 괴로움으로 인하여 뜨거워져 곧 터질 듯이 되어있는 사람, 그의 영혼이 돌과 같이 중한 짐에 눌리워 있는 사람, 이러한 사람은 위로를 받게 될 것인 까닭이다. 그렇다 슬퍼하는 자는 반드시 위로를 받게 된다. 이 세상에서는 슬퍼하는 것이 당연하다. 슬퍼할 일이 당신들의 안과 밖에 또 주변에 가득차 있지 않은가. 이 세상에서 기뻐 날뛰는 자는 누구인가 여기서는 슬퍼하는 사람이 참으로 살고있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그 사람은 반드시 위로를 받게 될 것이다. 그 눈에서는 눈물이 씻기워질 때가 온다. 그 마음의 상처가 완전히 나아질 때가 온다. 오지 않을 수 없다. 셋째로 행복된 사람은 온유한 사람이다. 학대 받고 짓밟히고 그래도 한 마디의 큰 소리도 못하고 양과 같이 잠잠하고 참는 사람, 속히우고(속임을 당하고란 뜻이라 해석된다-지유철) 빼앗기고도 오히려 찾아오려고 하지도 않고 종과 같이 참는 사람 이러한 사람은 이 세상에서는 가장 불쌍한 사람이겠지, 그러나 기억하라, 후에 땅을 유업으로 받을 사람은 이러한 사람들이다. 학대하는 자 빼앗기는 자 언제까지든지 이것을 허용할 수는 없는 것이다. 지금 이 세계는 저들에게 내맡기워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러나 이것은 잠깐뿐이다. 오래지 않아 때가 올 것이다. 그 때 저들은 바람에날리는 겨와 같이 날려버릴 것이다. 그리고 이 땅은 저들의 손에서 빼앗아 짓밟히고 속히우는 자들에게 내어주게 될 것이다. 서자가 그 기업을 잇는 것 같이 온유한 사람은 그들의 유업으로서 반드시 땅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참으로 이 불쌍한 이 없는 것과 같은 자야말로 오래지 않아 전 세계를 소유하고 통치할 미래의 왕자임에 틀림이 없다. 넷째로 행복된 사람은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이다. 의이다. 의로움이다. 의롭게 살고 싶고 의를 부러워하는 사람이다. 먹지 못한 사람이 먹을 것을 찾듯이 열병환자 또는 수술환자가 목이 말라 물을 갈급하듯이, 의에 주리고 목말라하는 사람, 암사슴이 시냇물을 사모하듯이, 의를 사모하는 사람, 무엇보다도 먼저 제일로 의롭게 되고저 하는 소원에 불타고있는 사람, 이 사람은 행복하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배불리워질 터이니까, 다른 소원은 들려지지 않는다고 해도 이 의의 소원만은 반드시 들려지고 채워진다. 어디까지나 충족히 채워질 때까지 들려진다. 자기를 둘러싼 모든 관계가 자기 존재의 모든 상태가 완전히 의롭게될 때까지 또 그의 영혼이 의로써 배불리어질 때까지 들리어질 것이며 무릇 의 아닌 것은 안에도 밖에도 그 흔적일지라도 남지 않을 정도로 채워질 것이다. 얼마나 행복된 일이 아니이오. 다섯째로 행복된 사람은 긍휼히 여기는 사람이다. 사람을 생각해주고 불쌍하다는 마음이 먼저 있는 사람, 꾸짖는 것보다 먼저 용서해주는 사람, 자기를 잊어버리고 자기를 희생함으로 해서 사람을 내세우려고 하는 사람, 받기보다는 차라리 주는 것을 기뻐하는 사람, 그 사람 자신이 어떤 큰 긍휼을 받는 까닭이다. 참으로 사람은 긍휼이 없이는 살 수 없다. 하나님께서 당신들을 긍휼히 여기시지 않는다면 당신들은 멸망 받을 수밖에 없지 않은가 두려운 심판이라는 것이 있다. 어떻게 그것을 면할 수 있으리오 다만 그의 긍휼을 의지할 길밖에 없다. 하나님께서는 긍휼히 여기는 자를 긍휼히 여기신다.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김을 받는 자는 행복되다.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할 수 있다. 여섯째로 마음이 청결한 사람은 행복하다. 즉 마음이 꿰뚫려 들여다보이는 사람, 생각이 단순하고 표리가 없고 두 마음을 품지 아니하고 거짓을 모르는 사람, 이 사람은 행복되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하나님을 볼 수가 있는 까닭이다. 불순한 마음에는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다. 검은 뱃속에는 거룩한 이의 모습은 떠오르지 않는다. 다만 일편단심 한 줄기의 정의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자만이 그의 마음 눈으로 하나님의 거룩하신 얼굴을 대할 수가 있다. 진리를 깨닫는 것보다 더 나은 행복은 없다. 일곱째로 행복된 자는 평화를 짓는 사람 화평케 하는 자이다. 싸움을 미워하기를 뱀이나 전갈같이 하고 될 수 있으면 어떠한 대가를 지불하고라도 이것을 낫게하지 아니하면 마지 않는 사람, 분렬과 투쟁의 근본 원인을 궁구하여 몸소 이것을 제거하려고 하는 사람.평화의 전담을 위하여 그 기둥이 되기를 싫어하지 않는 사람, 이러한 사람은 행복되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일컬음을 받게 될 것이니까. 하나님은 화평케하시는 분이시다. 그는 친히 절대의 희생을 지불하시고 만물 사이에 화평을 실현하시려고 내려 오셨다. 그러므로 평화를 만드는 사람을 기뻐하신다. 그리고 내 아들아 하고 그를 부르신다. 여덟째로 행복된 자는 의를 위하여 책망을 받는 자이다. 의롭기 때문에 사람으로부터 미워함을 당하고 배척 받고 핍박당하며 불의하고 간악한 이세상이 용납할 수 없는 사람, 이러한 사람을 위하여 별개의 나라가 준비되어 있다. 즉 하늘나라이다. 천국은 이 세상에서 평안히 사는 자들에게는 쓸 데 없다. 그것은 다만 의를 위하여 책망과 핍박을 당하는 사람들의 것이다. 여러분, 당신들은 머지 않아 예수를 위하여 사람들로부터 비웃음을 당하고 책망을 받고 거짓말로 욕을 먹을 것이다. 그때 당신들은 행복된 것이다. 기뻐하시오 크게 기뻐하시오, 왜냐하면 당신들이 받을 상은 하늘에서 클 것이니까, 천국은 풍성한 잔치를 베출고 당신들을 기다리고 있으니까, 생각해보라 당신들보다 앞에 보내심을 받았던 선지자들도 다 이와같이 책망을 당하지 않으셨나요, 엘리야, 엘리사, 아모스, 호세아, 이사야, 예레미아, 손양원,주기철, 그리고 저들은 다 하늘에 있는 것을 바라고 기쁘게 그 핍박을 받지 않았는가.사람은 당신들을 경멸히 여길 것이다. 세상의 티끌과 같이 땅의 먼지와 같이 대접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당신들은 자기의 지위가 중한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당신들은 누구인가 티끌이나 먼지가 아니고 소금이다. 땅의 소금이다. 소금인 까닭에 물건을 썩지 않고 보전된다. 당신들이 있기 때문에 세계는 멸망되지 않고 남아있다. 아무렇지도 않은 것 같으나 당신들의 존재의의는 참으로 깊다 그런데 이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어떻게 되겠어요, 무엇에 쓰겠느냐 쓸 데 없어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다. 당신들이 속화되어버리면 그야말로 쓸데없어 처치 곤난한 존재가 되고 말 것이다. 당신들은 이 세상의 티끌이 아니다. 세상의 빛이다. 티끌 같으면 골짜기에 메워질 것 뿐이다. 그러나 빛이라면 높이 비치지 않으면 안된다. 산 위의 성(등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어디서든지 볼 수 있는 것이다. 또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반드시 등경위에 두어 온 집 안 사람들에게 그 빛을 비치게 하지 않느냐, 그와같이 너희들도 너희 빛을 비치며 누가 진리를 전하리요, 지금 온 세계는 암흑이다. 양떼들은 다 미혹되어 곁길로 나아가고 있지 않은가, 일어나라 빛을 비치라 예수님께서 당신들의 빛이 되시니까, 그리하면 사람들은 당신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영화롭게 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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